본문 바로가기

아무거나/회고록

6주간의 샌프란시스코 출장 회고록

2023.08.14~2023.09.24까지 약 6주간 미국 샌프란시스코로 출장을 다녀왔다. 20대 초반 중 가장 소중한 경험을 했다.

작성한 것에 몇 배는 되는 것을 느끼고 배웠지만 블로그에 올릴만한 내용만 정리해 보았다.

 

1. 김대표님···!! 미국이… 가고 싶어요···.

 지난 6월쯤 대표님이 개발 팀장님 외 1명이 약 6주간 미국 출장을 떠난다고 하시면서 미국에서 성과를 만들 수 있다면 참여할 수 있다고 하셨다. 30대에 미국에서 한 달 살기가 목표였기에 이전부터 미국 출장 얘기가 나왔을 때 가고 싶다고 생각은 했지만, 영어도 안 되는 상태에서 개발자인 내가 갔을 때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생각나지 않았다. 그래도 찾아보면 뭐라도 나오겠지 하는 마음에 Eventbrite나 Meetup을 통해 개발자로서 참여하여 회사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이벤트를 찾아보았다. 많은 이벤트가 있지만 ‘영어를 못하는 개발자’인 내가 참여해서 기여할만한 게 딱히 없었다.

 

새벽까지 찾는 중 출장 기간에 열리는 해커톤을 발견했다. 해커톤은 왓섭 인원으로 팀을 만들면 돼서 영어를 못하는 개발자인 내가 시도할만했다. 하지만 이런 거로 되겠어~ 생각하고 넘겼다. 그리고 어느 날 큰 기대 없이 팀장님께 해커톤을 말씀드렸는데 우승 시 왓섭을 알리고 리워드도 있어 굉장히 좋은 아이디어라고 해주셨다. 생각보다 긍정적인 반응에 대표님께도 말씀드렸고 허락해 주셔서 6주 중 일주일 정도 미국 일정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일주일간 참여할 수 있는 모든 이벤트에 참여하고 싶고 어떻게든 회사에 기여해보고 싶어 며칠간 새벽 내내 이벤트를 계속 찾았다.

미국이... 가고 싶어요...

5년 전 고등학생 때 서울시 프로그램을 통해 샌프란시스코 기업 탐방을 일주일간 했는데, 그때 만났던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아 만났던 사람들을 정리했다. 

 

비록 일주일이지만 정말 다양하고 많은 사람을 만나고 경험했다는 것을 새삼 느끼면서 6주 동안 있으면 얼마나 많은 사람을 만나게 되고 정말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을지 상상되기 시작하면서 이 기회를 절대 놓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대표님을 설득하기 위해 6주 치 이벤트와 내가 기여할 수 있는 것들을 정리했다. 하지만 내가 준비한 것들은 살짝 애매하다고 하셨다. 무슨 수를 써도 미국 출장 전체 일정에 참가하고 싶어 포스터라도 뿌려서 앱 홍보라도 하겠다고 했고 

결국 나는 미국 출장에 참여하게 되었다.

 

2. Can 'I' speak English...?

 미국 도착 후 첫 일정인 MobileWeek라는 컨퍼런스에 참여했다. 약 20개 정도의 기업이 부스가 있었고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다. 

앱 홍보가 주목적이기에 이번 이벤트에 참가한 사람들이나 부스에 있는 사람들에게 왓섭을 소개하며 최소 10명 정도 설치시켜 보려 했다. 

하지만 막상 영어로 말하려니 말이 전혀 나오지 않았다. 몇 시간이 지나고 결국 누구에게도 말을 걸지 못하고 복귀했다. 

 

아예 말을 못 할 정도로 영어를 모르는 것은 아닌데 막상 하려니 걱정이 앞서 말을 전혀 하지 못했다. 이를 본 팀장님은 스파르타식으로 MobileWeek 2일 차를 혼자 가서 모든 부스와 얘기하면서 영어로 말하는 방법을 배워오라고 하셨다. 

 

다음날 혼자 우버를 타고 San Mateo에 있는 이벤트 장소로 갔다. 아니나 다를까 말이 나오지 않아서 크지도 않은 행사장을 빙빙 돌기만 했다. 한 시간 정도 지난 뒤 부스에 있는 사람이랑 눈을 마주치고 부스로 거의 끌려가서 서비스 설명을 듣게 되었다. 전부 이해하지 못했지만 어느 정도 이해는 됐고 아주 간단한 대화를 했다. 

 

여기저기 돌면서 깃허브 뱃지, 7벌의 반팔티, 작은 장난감 드론까지 받았다!

영어로 대화하는 것은 생각보다 할 만했고 이후에는 부스 주변을 맴돌면서 눈이 마주치면 서비스 설명을 듣고 왓섭 소개도 해보았다.

3시간 정도 걸려 20개 부스를 모두 돌고 모든 부스를 돌았을 때 받을 수 있는 상품을 받으며 숙소로 복귀했다. 

 

이후 다양한 이벤트를 참가하며 첫 주에 아예 영어로 말을 못 하는 나는 조금이나마 간단한 대화를 할 수 있게 되었다.

2주 차에는 조금 더 다양한 얘기를 하며 회사소개를 간단하게 할 수 있게 되었고 3~4주 차에는 이벤트 내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먼저 말을 걸 수 있게 되었다.  막바지에는 이벤트 장소에 혼자 가서 스몰토크도 할 수 있고 숙지한 내용에 대해서는 길게 대화할 수 있게 되었다. 

4주 차쯤에 갔던 이벤트에선 한국의 감성주점, 클럽에 대해 영어로 설명해주고 있는 자신을 보며 나름 뿌듯하기도 했다.

 

미리 영어 공부를 해뒀으면 하는 뻔한 후회도 뼈저리게 하게 되는 시간이었다. 한국에 온 지금은 나름 공부를 하고 있다. 영어 회화도 감을 잃어 또다시 아무 말도 못 하기 전에 계속 실력을 늘려야겠다.

 

 

어느정도 맞는 것 같다 ㅋ.ㅋ

 

3. ENTJ는 눈치 안 본다는데…

 MBTI를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나는 ENTJ다. 눈치를 잘 안 보는 성향이 있다는데 이번 미국 과업을 진행하며 스스로 눈치를 엄청나게 보는 사람이라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미국에서 내 과업은 앱 홍보가 우선이었고 한국에서 여러 종류의 포스터를 만들어두었다. 하지만 막상 미국에 오니 포스터를 붙일만한 장소가 없었다. 한국은 포스터가 여기저기 붙어있어 그 주변에 붙이면 될 것 같았는데 길거리가 깨끗하진 않지만 포스터를 붙이면 안 될 것 같았고 내가 길거리를 더럽히는 기분이 들었다. 그나마 붙여도 될 것 같은 장소에 포스터를 붙일 때도 누가 뭐라 하지 않을까, 길거리에 붙이는 것을 안 좋게 보지 않을까 눈치를 엄청 보면서 붙였다. 나중엔 사람이 많은 곳에 붙일 수 있었지만 처음에는 눈치 보여서 사람들이 별로 없는 곳에 붙였다. 

 

며칠 지나고 성과가 안보이자 팀장님이 포스터를 사람들에게 직접 주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하셨다. 이 말을 듣고 나서부터 앱 홍보가 부담이 되기 시작했다. 한국에서도 길거리 모르는 사람들에게 말을 못 걸 것 같은데 혼자 미국 사람들을 붙잡고 영어로 홍보를 할 생각을 하니 걱정이 앞서고 심적으로 매우 부담되었다. 팀장님의 도움을 통해 UC 버클리로 가서 포스터 배부를 하게 되었다. 포스터를 그냥 주는 게 아닌 붙잡고 설명을 하며 주다 보니 한 장 줄 때마다 한숨만 나왔고 전부 배부하고 나니 온몸에 힘이 빠졌었다.

 

거의 이 표정으로 숙소로 복귀했다.

미국 일정이 절반쯤 지났을 때 혼자 길거리로 나가 앱 홍보를 시도하게 되었다.

이때 약 한 시간가량 말을 못 걸어서 길거리를 배회하다 어떤 양복 입은 직장인에게 겨우 말을 걸었는데 먼저 말을 걸고 당황해서 엄청 절었다. 그 사람은 이상한 사람을 본 듯 한 표정으로  곧 미팅 있다고 하고 가버렸고 이후 몇 명에게 비슷하게 거절당했다. 안 그래도 없던 자신감이 더 없어졌다.

 

몇 시간 동안 돌아다니며 말을 걸지 못하는 원인을 생각해 봤다. 크게 두 가지 원인이 있었는데 말이 길어졌을 때 그걸 대응할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이것보다 더 힘들었던 것은 길 가다 붙잡는 나를 안 좋게 보지 않을까? 제대로 설명을 못하는 나 그리고 왓섭을 안 좋게 보지 않을까? 등등 별 필요 없는 걱정들이었다. 이렇게 글로 쓰기 창피할 정도로 정말 별에 별 생각을 다 하며 다 눈치 보고 걱정했다. 그리고 이런 생각들은 점점 합리화를 하기 시작하고 부정적인 생각들로 귀결되었다.

 

시간이 갈수록 사람들에게 말을 거는 게 힘들었고 결국 큰 성과 없이 숙소로 복귀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정말 급한 게 아닌 이상 크게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어차피 다시 안 볼 사람인데 싫어하면 어떤가? 나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과거에 팟캐스트를 통해서 우울증에 걸린 사람에게 뭐라도 해보라고 하는 것은 폭력이나 다름없다고 하는 것을 듣고 이해가 되면서 안되었는데 이번에 어느 정도 그 기분을 이해할 수 있었다.

 

다 아는 것들인데 안된다. 누구나 그 당시 나를 보면 답답해할 것이고 스스로도 너무 답답했다. 23년밖에 살지 않았지만 이 정도로 심리적으로 힘든 적은 처음이었다. 밴드 경연 대회, 길거리 밴드 공연, 고등학교 전교 임원 선거, 첫 취업 면접 이런 것 보다 길거리 사람들에게 말을 거는 게 몇 배는 부담되었다. 출장이 끝날 때까지 이벤트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홍보는 할 수 있어도 길거리 사람에게 말을 거는 것은 제대로 하지 못했다. 웬만하면 어떻게든 할 수 있을 거야라고 말하는 편이지만 너무 힘들었기에 할 수 있다는 말을 쉽게 하지 못하겠다.

 

UC 버클리에 포스터 뿌리러 간 날. 날씨는 참 좋았다.

그래도 내가 하겠다고 한 일이라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려고 했다. 다 끝난 지금 생각해 보면 버클리에서 포스터 뿌리기, 샌프란시스코 길 한복판에서 사람 붙잡고 앱 홍보하기를 언제 해보겠는가? 미국 일정 중 가장 힘들었지만 가장 많은 것을 느끼게 해 주었다.

 

4. 너 내 도.도.도..독…동료가 되어라!

피어나! 너 내 도도독...

 미국 일정 동안 수십 개의 이벤트에 참여하고 다양한 사람을 만나면서 네트워킹을 했다. 

네트워킹의 중요성은 어느 정도 알고 있었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을 좋아하긴 하지만 성격이 안 맞는 사람을 만났을 때 스트레스받는 것이 싫어서 비즈니스와 상관없이 새로운 사람과의 만남을 즐겨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미국에서 네트워킹을 어느 정도 구축하는 것도 하나의 과업이기에 나름 열심히 시도했다.

 

첫 일정인 MobileWeek에서 인도인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말이 정말 많은 사람이었다(그래도 사람은 착하다). 어쩌다 보니 친해져서 미국에 거주하시는 한국인분을 소개받았고 그분을 통해 어떤 식으로 투자사를 찾아야 하는지, 노베이스로 미국에 온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조언들을 해주셨다. 조언을 통해 여러 개의 이벤트를 참여하며 다양한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았다.

 

우리가 해야 할 것들에 대해 방향이 잡히고 점점 고민하는 것들이 발전하는 것을 보며 네트워킹을 통해 성장하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타지에서 온 세 명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동료가 되고 도움을 받고 앞으로 나아가는 게 마치 모험 속 주인공과 비슷해 보였다. 처음 만난 사람을 통해 사람을 소개받고 소개받은 사람을 통해 또 다른 사람을 소개받아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이 정말로 재미있었다.

 

하루는 계획과 다르게 혼자서 한 기업의 대표님을 혼자 만나러 가게 되었다. 그 대표님을 통해 구독 모델에 대한 깊은 내용을 듣게 되었다. 

정말 도움 되는 내용이 많아서 이를 팀원들에게 빨리 공유하고 싶었고 저녁에 모여서 하루 정리를 하며 들었던 내용을 공유하는 과정도 너무 좋은 경험이었다. 

 

이렇게 네트워킹을 통해서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고 여러 면에서 빠르게 성장하는 것을 직접 느꼈다.

나중에는 받은 도움을 더 큰 도움으로 보답하고 싶다. 또한 내가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5. 6주간의 미국 출장을 마치며

이번 출장을 통해 22살이라는 나이에 누구도 쉽게 할 수 없는 경험을 했고 많은 것을 얻었다. 이런 경험을 할 수 있게 해 준 왓섭에 정말 감사하다. 6주라는 기간이 너무 길고 알차게 돌아다녀서 회고록에 못 담은 내용도 많다.

과업 외에도 다양한 음식, 요세미티와 같은 국립공원은 대자연의 위대함 등 글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경험을 했다.(엄청난 물가도…)

 

사진으로는 담을 수 없는 뷰라 너무 아쉽다.

힘든 것도 정말 많았지만 배운 것도 너무 많았다. 한편으로는 이 기회를 100% 살리지 못한 것과  회사입장에서 큰 기여를 못한 것 같아 아쉬운 점도 있다.

 

연말이 되면 항상 내년이 기대가 된다. 그리고 2024년은 더욱더 기대가 된다. 살면서 가장 큰 경험을 하게 된 것 같고 이런 경험이 내년의 나를 어떻게 만들지 기대된다.

앞으로 남은 2023년이 3달 정도 남았는데 미국에서 배운 것을 잊지 말고 계속 발전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마지막으로 이번 출장동안 어린 나 때문에 힘들었을 팀장님, AI 리서처이자 미국 확장 담당자(?)님 그리고 많은 조언을 해주시고 출장을 허락해 주신 대표님 모두 죄송하면서 감사한 마음이 있다. 또한 미국 일정동안 만난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하다고 전하고 싶다.

 

미국 회고록 끝!